네이버인증 TPE

카테고리 없음

24회 철학올림피아드 고등부 대상작 - 논술

Tony Park English 2016. 2. 22. 23:05
반응형

24회 한국철학올리피아드 고등부  대상 : 대전성모여자고등학교  박준하

 

제시문과 문제는 여기를 클릭 24회 철학올림피아드 고등부 기출 문제

 

 

산업 혁명 이후, 기술이 발전하면서 과거와 같은 양의 노동력으로 훨씬 더 많은 풍요가 보장되었다. 그러나 현대 인간은 과거에 못지않게 일을 하고 있고 단순히 어떠안 일 그 자체에 목적을 두기보다는 더 많은 이익을 목적으로 노동에 얽매여 산다. 나는 글쓴이와 같이 현대 사회를 이와 같은 모습으로 바라보며 이러한 상황이 변화해야 함에 동의하는 바이다. 그러나 글쓴이는 일과 여가를 상반되는 개념으로 정해놓고 여가와 소비 즉 노동과 생산에 반하는(글쓴이의 주장 전개에 따르면) 것들만을 옹호하다 보니 글쓴이의 주장을 수요하고 실행해 나가기에는 문제점들이 있는 것으로 보였고 견해 자체에서도 생각이 달랐다.

우선 짚어볼 것은 근로와 여가의 명확한 구분이 가능한가이다. 글쓴이는 근로와 여가를 확실히 다른 것으로 치부했지만, 그 구분에 대해서는 명시되어 있지 않다. 이는 일과 여가의 경계가 매우 모호하여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직업선택의 과정에서 흔히들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한다. 내 취미가 사진 찍기이고 여가시간마다 카메라를 들고 나가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한다고 해보자. 만약 내가 이후 직업을 사진 작가로 택한다면 어떻게 될까? 사진 작가가 되는 그 순간부터 사진찍기는 직업으로, 돈을 벌기 위한 이 되어 버려 더 이상 즐겁지 않게 될까? 그렇다면 직업으로서의 일과 놀이로써의 일이 노동과 여가의 구분점이 되는 것이라는 말인가? 또 다른 상황을 가정해 보자. 사진작가가 된 나는 노을을 찍으러 산위에 올라 갔는데 그 옆에서 사진찍기가 취미인 한 소녀가 사진을 찌고 있다. 이 상황에도 마찬가지로 나는 일을 하기에 힘들고, 소녀는 즐거울까?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나는 일을 하면서도 즐거울 수도 있고 평소에 하던 작업이 아닌 나만의 여가를 즐기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엇이든 어떤 사람에게는 일이 될 수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여가가 될 수 있고, 이 때문에 일과 여가는 명확이 구분할 수 없다. 실제로도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을 구분없이 인간이 행하는 모든 행위에 부쳐 사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글쓴이가 이 두 개념을 상반된 것으로 쓴 것은 잘못 되었다고 본다.

다음으로 글쓴이는 생산과 소비에 대해 언급하며 현대 사회는 생산에만 집중하지만 소비가 목적이며 이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에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애초에 생산에 집중하게 만들 것이 소비라고 생각한다. 기술이 발전하변서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되었고 끝이 없는 욕심과 필요 이상의 것들을 생산하게 되었다. 또한 어는 한쪽이 소비하다면 다른 한쪽은 생산을 해야하기 마련이다. 소비가 주는 즐거움의 향유나 소박한 행복이 생산이 소비자에게 주는 기쁨이라기 보다는 노동(글쓴이가 생각하는 개념으로써의 일)과 생산의 증가라는 점을 고려하지 않아서는 안 될 것이다.

글쓴이는 도시의 즐거움이 수동적인 여가가 되어 버린 것을 비판하기도 했는데 이와 같은 현상이 일에 에너지를 너무 많이 소비해서라고 할 수 있을까? 쉬는 날 사람들 밖에서 신체 활동보다 영화를 보고 라디오를 듣는 것이 과중된 일과, 여가의 부족 때문이라면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적극적 신체 활동을 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 물론 노동이 고되고 힘들어 여가 시간에는 수동적인 일을 할 수도 있지만, 무조건 그렇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현대 사회에 들어서며 기술이 매우 발전했고, 이에 따라 과거에 비해 적은 신체활동으로 즐길 수 있을 만한 것들이 늘어 자신이 직접 축구를 하지 않아도 TV로 편하게 볼 수 있고, 게임기로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과거에 비해 수동적인 즐거움을 얻는 것을 노동략의 차이 때문으로 보는 것은 편협한 생각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누구도 하루 네 시간이상 일하도록 강요받지 않는 세상을 가정하는 부분에서도 문제점이 있다. 글쓴이가 이러한 세상을 너무나 이상적으로 그려 결과에 대한 수긍이 가지않고, 가정과 너무나 먼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글쓴이가 가정한 생각이 글쓴이의 견해에 따르면 긍정적일 것이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 과정에서의 자세한 설명이 없어 어떻게, 그리고 왜 인생의 해복과 환희가 충만할 것인지를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무에 글쓴이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

이 세 가지 외에 핵심 주장의 논리적 전개 과정에서의 오류는 많다. 노동자가 인생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이 노동이라는 것을 한 번도 듣지 못했다고 해서 그러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단정지을 수 없으며 일하는 사람은 장시간 일해야만 하고 나머지는 일자리가 없어 굶어 죽는다고 현 사회를 바라보는 것에서도 너무나 편협하게 사고한 것이 들어났다. 소위 갑부라고 불리는 부유한 계층은 많은 여가시간을 보내고 놀고 즐기지만 굶어 죽고 있는 아프리카나 동남아사아의 사람들은 하루종일, 그야 말로 뼈빠지게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이 글의 전체적 전개에서 많은 논리적 오류가 존해하는 것은 글쓴이가 생산-근로를 중시하는 현대 사회의 사고방식에 이분법적으로 맞서 근로는 나쁜 것, 여가는 좋은 것이라는 식의 사고로 글을 전개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글쓴이 견해의 부족한 점을 지적한 것의 결론은 무엇인가. 앞서 말했듯이 나는 글쓴이가 제시한 노동에 얽매인 현대 사회의 부정적 측면은 인정한다. 그리고 이에 대해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글쓴이는 변화를 위해 여유가 필요함을 놓이고 있다. ‘여유라는 개념이 빠졌기에 이분법적으로 바라 볼 수 밖에 없었고 여러 오류가 발생한 것이다. 여유가 있다면 근로이든 혹은 노동이든 여가이든 중요하지 않다. 같은 일이라도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고 여유를 가지냐에 따라 달라 질 수 있다. 귀농하거나 주말 농장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본래 농부로써 농사일을 하는 사람들보다 즐겁게 일을 한다. 바로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여유란 단순히 심적인 여유뿐만 아니라 경제적 여유 또한 포함되는데 귀농하거나 주말 노장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농작물로 인한 경제적 이득에 좀 더 여유롭기 때문이다. 경제적 여유가 없다면 근로를 여유롭게 즐길수만은 없을 것 이다. 또한 현대기술이 발전해 풍요롭지만 그 풍요를 즐기지 못하는 모순적 상황은 기계가 더 빨리 많은 것을 생산하는 것에 따라가고, 더 큰 욕심을 내기 때문에 발생했다. , 기계는 게계이고 인간은 인간대로의 여유를 가졌으면 없었을 상황이다.

우리의 어리석음은 기계가 없는 예전보다 더 많이 일하는 것이 아니다. 더 생산해서 돈을 벌지 않아도 된다는 여유, 일을 즐기는 여유가 없는 점에서 어리석은 것이다. 우리에게 편인함과 안정을 주는 것은 단순한 노동의 감소가 아니라 우리가 잃고 사는 여유다.

 

제시문과 문제는 여기를 클릭 → 24회 철학올림피아드 고등부 기출 문제

반응형